“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지난 2000년 9월부터 16부작으로 방영되며 큰 인기를 누렸던 ‘가을동화’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극중 태석(원빈)이 은서(송혜교)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사랑을 사려면 얼마가 필요하느냐고 묻는 장면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20대였던 주인공 원빈도 마흔을 넘어섰고, 당시 본방사수하며 드라마를 지켜봤던 나도 오십을 앞두고 있다.
발등의 불! 4050세대의 노후준비 실태
마흔을 넘어서고 오십이 다가오면서 노후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4050세대에게 있어 노후는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문득 직장에 다닐 날이 여태껏 직장을 다닌 날보다 적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묻는다. 노후를 평안하게 살려면 생활비는 “얼마면 돼?”
단순히 생활비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자녀부양 비용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혼으로 출산시기가 늦어진데다, 자녀 교육기간은 늘어나 은퇴 후에도 자녀부양 부담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4050세대가 은퇴 후 노후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소득과 생활비, 자녀부양 비용에 대해 살펴보자.
[1] 은퇴 후 소득으로 은퇴 전 소득의 64.3% 희망
재무설계사가 은퇴설계를 할 때는 고객에게 “은퇴 후 얼마의 소득을 희망하느냐” 또는 “은퇴 후 생활비로 얼마가 필요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명쾌한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집집마다 소득과 생활비 규모가 다른데다 은퇴 후 희망하는 삶의 모습도 제각기 달라 이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통계에 참조해 대답하거나, 현재소득과 비교해 어림짐작으로 대충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은퇴 후 소득과 생활비를 참조할만한 통계나 지표로 어떤 것이 있을까? 최근 보험개발원에서는 ‘2018 KIDI 은퇴시장 리포트’를 내놓았다. 2017년에 서울과 부산 등 광역시에 거주하는 비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을 분석한 것으로, 4050세대는 은퇴 후 소득으로 은퇴 전 소득의 64.3%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소득을 구간별로 보면, 은퇴 전 소득의 50~75%를 희망하는 사람이 44.8%로 가장 많았고, 75~100% 사이를 희망한 사람과 25~50%를 희망한 사람은 26.7%로 동일한 비율로 조사됐다. 통상 재무설계사들이 은퇴 전 소득의 60~70%를 은퇴 후 소득으로 가정하는 것과 크게 틀리지 않은 셈이다.
그러면 노후생활비로는 얼마가 필요할까? 같은 조사에서 4050세대는 부부가 함께 사는 경우 최소생활비로는 월 265만원, 적정생활비로는 월 327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개인기준으로는 최소생활비로 158만원, 적정생활비로 194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국민연금연구원이 조사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2017년 4월부터 9월까지 50세 이상 4천 449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후에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부부는 월 243만원, 개인은 153만 7천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최소생활비로는 부부는 176만 100원, 개인은 108만 700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은퇴 후 예상소득은 은퇴 전 소득의 48.1%에 불과
그렇다면 은퇴 후 예상되는 소득은 얼마나 될까? 희망하는 만큼 벌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개발원의 은퇴시장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4050세대가 은퇴 후에 실제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하는 소득은 은퇴 전 소득의 48.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소득 수준과 예상소득 수준이 16%나 적은 셈이다. 특히 국민연금 외에 다른 소득이 없는 가구는 이 같은 차이가 훨씬 더 큰 것으로 예상된다. 기준소득월액이 200만원인 근로자가 국민연금을 단절 없이 40년간 가입하더라도 소득대체율이 43.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 4050세대의 노후준비 방법 1순위는 공적연금
그런데도 4050세대는 노후준비방법으로 공적연금을 최우선순위로 꼽았다. 이번 보험개발원조사에서 노후준비 방법을 묻는 질문에 남자는 71.7%가 공적연금을 1순위로 꼽았다. 다음 순서는 예?적금과 저축성보험(11.5%), 사적연금(8.4%), 퇴직급여(4.1%), 부동산운용(4.0%)이 차지했다. 여자의 공적연금에 의지하는 비율은 57.4%로 남자에 비해 훨씬 낮게 나타났다. 대신 노후준비방법으로 예?적금과 저축성보험(20.6%)이나 사적연금(13.7%)을 노후준비 방법으로 활용하는 비율은 남자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이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노령연금을 수령하려면 가입기간이 10년 이상 되어야 하는데, 결혼과 육아 등으로 이 같은 기간을 채우지 못하는 여자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4] 4050세대 중 56.6%는 은퇴 후에도 자녀부양 부담스러워 해
4050세대는 공적연금 등 은퇴 후 예상소득이 희망하는 소득에 많이 못 미친다. 이대로라면 노후생활비를 대기도 벅차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보험개발원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6%가 은퇴 후 자녀부양부담이 남아 있다고 답했다. 이중 자녀부양이 매우 부담스럽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10.7%나 됐다.
아무래도 결혼과 출산이 늦어진 데다 자녀의 교육기간 또한 늘어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뿐만 아니라 주택 및 전세가격 상승으로 자녀 결혼비용이 급증한 탓도 있다. 4050세대는 은퇴 후 자녀교육비로 평균 7,258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은퇴 후 자녀교육비로 1억원에서 2억원 사이의 금액이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25.3%로 가장 많았다는 점은 눈 여겨볼 만하다. 이는 자녀 한 명당 비용으로 자녀가 더 있으면 부담을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4050세대는 은퇴 후 자녀 결혼비용으로 평균 1억3,952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자녀 결혼비용으로 5천만원에서 1억원 사이의 금액이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31%로 가장 많기는 했지만, 1억5천만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도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재무설계사는 4050세대를 대상으로 한 은퇴설계를 할 때는 예상소득과 생활비뿐만 아니라, 자녀부양 비용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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